2025

올해의 주제

민주주의의 미래

 지난해 12월 한국 사회가 겪은 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는 과거처럼 총칼과 군홧발로 하루아침에 제도가 무너지는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드러난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내부에서 조금씩 침식되었습니다. 규범은 지켜지지 않았고, 정치적 반대자는 적으로 규정되었으며, 불평등과 배제는 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허물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느 순간 위험한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우선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규범이 무너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법이나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존중, 권력의 한계를 지키는 자제, 합의를 향한 인내 같은 보이지 않는 규범이 깨지면 제도 그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성과 토론보다 ‘감정의 정치’가 앞설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분노와 혐오, 두려움이 여론을 지배하면 사실보다 감정이 우선하게 되고, 민주적 의사소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설득 대신 모멸이 자리를 차지할 때, 대화와 타협은 사라집니다.

불평등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능력주의를 내세운 사회에서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합니다. 능력 있는 소수가 더 많은 기회를 독점하고, 다수의 시민이 배제될 때, 민주주의는 ‘모두의 제도’가 아니라 ‘특권층의 제도’로 변질됩니다.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권력은 세습되고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집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기반은 점차 약화됩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다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시민의 참여와 상상력을 넓히는 데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는 시민의회와 숙의 민주주의는 그 증거입니다. 무작위로 뽑힌 평범한 시민들이 공적 의제를 논의하고, 숙의와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는 실험은 민주주의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더 포용적인 제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의 오전과 이른 오후 세션에서는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든 구조적 요인들-정치적 양극화, 규범의 붕괴, 감정의 정치, 불평등과 배제-을 진단하고, 국제적 사례 속에서 우리의 현실과 맞닿은 교훈을 살펴봅니다. 늦은 오후 세션에서는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논의합니다. 시민의회와 같은 큰 틀의 전략뿐 아니라, 이미 시도되고 있는 혁신적 정책과 활동을 분과 세션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한국과 세계의 실험들을 함께 검토하며 우리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일상, 서로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어떻게 규범을 지킬지, 불평등을 줄일지, 시민들이 더 넓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선택이 곧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세워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함께 답해 가는 과정이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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